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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 SF 영화, 장르가 멜로라는 거 아세요?

by 모든 것이 알고 싶다 2025. 3. 11.

미키17

내 안에는 몇 개의 미키가 있을까

영화 미키17에서는 '익스펜더블'이라는 직업이 등장합니다. 주로 위험한 실험에 투입되는 익스펜더블은 죽으면 신체를 복제하고 여기에 기억과 성격 같은 데이터도 주기적으로 동기화하고 주입해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즉, 죽기 전에 처음 본을 딴 몸으로 재탄생하며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17번째로 다시 태어난 미키는 행성 탐사 중 죽은 줄 알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바람에 새로 프린팅된 미키18과 조우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러 명의 익스펜더블이 존재하는 '멀티플'이 허용되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위기를 해결해 가는 미키의 소동극이 바로 이 영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 중 미키는 여러 번 출력되지만 모두 미키라는 한 사람입니다. 공존하게 된 미키17과 미키18도 결국 '미키'라는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미키들은 약간씩 차이점을 가집니다. 미키의 연인인 나샤는 그동안 출력된 미키마다 도드라지는 성격적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미키는 우유부단했고 어떤 미키는 순한 맛이고 어떤 미키는 공격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샤는 그런 모든 미키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모든 미키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키가 말한 것처럼 그를 위해 이성을 잃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미키를 그저 익스펜더블, 즉 소모품으로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샤는 그를 한 사람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유일한 존재로 바라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유일하게 이성 간의 사랑을 다룬 멜로 영화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샤가 모든 미키를 한 사람의 미키로서 공평하게 사랑한 것처럼 미키1도 17도 18도 모두 미키의 모습입니다. (이 영화에는 '공평'이라는 대사도 자주 등장합니다) 권위에 저항하지 않고 정도를 지키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미키가 있습니다. 그리고 권위에 도전하고 독재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미키가 있습니다. 두 미키 모두 '미키'라는 한 사람의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 안에도 여러 모습의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죠. 때로는 생존을 위해 타협하고 때로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처럼, 분열되기도 하고 서로의 모습을 비난하고 증오하기도 하지만 모두 '나'라는 한 사람입니다. 이런 나의 모습도, 저런 나의 모습도 모두 내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인정합시다. 그리고 나샤가 미키에게 그런 것처럼 나의 모든 모습을 사랑해 줍시다. 저는 이 메시지가 바로 영화 미키17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짜 외계인은 누굴까

영화 미키17은 2050년대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고 지배하기 위해 멀리 떠나는 우주 사업이 한창인 시대입니다. 미키는 그중에서도 '니플헤임'이라는 행성으로 떠나게 됩니다. 우리가 태양계 바깥에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막연히 믿듯이 니플헤임에도 이미 그곳에서 살고 있던 생명체가 있습니다. 독재자 부부가 그들을 '크리피하다'는 이유로 '크리퍼'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한국말로 한다면 '끔찍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정복해야 할 '외계인'으로 상정합니다. 하지만 나샤는 외칩니다. 그들이 원주민이고 외계인은 바로 우리들이라고 말입니다. 크리퍼들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착륙한 우리 인간이 외계인이고, 크리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낯선 존재를 경멸하고 혐오하며 때로는 야만적이라고 낙인찍지만, 그렇게 낙인을 찍고 더 이상 이해하려고 마음을 열지 않으며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보다 자기 종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낯선 존재들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아이러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소스의 의미

영화 미키17은 이미 2년 전에 촬영을 마쳤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현재 세계적인 정세를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악역 캐릭터들의 모습은 지금 대두되는 여러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미키17을 본 전 세계 사람들이 본인 국가의 정치인이나 역사 속 인물을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미키17에 등장한 악역들은 역사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나의 전형적인 독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멍청하고 모자라지만 이기적이고 뻔뻔한 후안무치 인물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 만연한 권력 남용을 돌아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악역 부부 중 마샤의 아내인 일피는 유난히 '소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꾸만 마샤에게 소스를 맛보게 하고, 새로운 소스를 만들고, 마지막까지 소스 타령을 합니다. 그리고 먹는 음식을 늘 화려한 색감의 소스로 장식합니다. 영화 속 일반인들은 식욕을 돋우기는커녕 맛이 존재하기는 할까 싶은 무채색의 묽은 죽 같은 수프를 배식받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소스는 음식의 맛을 끌어올리는 조미료이기도 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는 눈속임이기도 합니다. 즉, 소스는 서민들과 대조되는 기득권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을 상징하는 동시에, 독재자들이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맛을 속여 현혹하기 위해 제조하고 남용하는 정치적 훼방이기도 합니다.

 

열일곱번째 미키는 행성 토착민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를 추측하다가 '소스라도 끼얹었어야 했나?'라고 합니다. 그 말에는 하층민이 아니라 권위자처럼 보여야 그들이 상대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무력한 자조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토착민의 우두머리와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이주민 중에서도 가장 하층민을 상징하는 미키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의도적이고 개혁적인 주제를 상정해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처럼 계층 간의 엇갈린 사랑의 작대기를 통해 사회 구조의 반전과 개혁을 제시한 건 아닐지 생각하게 됩니다.